수행대기업무

  • 로딩중
  • 실험ㆍ인지역사
  •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역사



    이광오(영남대학교 심리학과)



    실험 및 인지 심리학 연구의 역사는 대략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1946년의 한국심리학회의 창립으로부터 60년대 말까지의 태동기이다. 이 시기는 아직 전공이 분화되지 않은 시기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파라다임에 의해 연구들이 많은 영향을 받던 시기이다. 두번째 시기는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로 비로소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전공자들이 나타나서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게 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또한 인지주의가 연구의 주요 파라다임으로서 자리를 잡는 시기이다. 마지막 시기는 80년대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로서 분과회의 창립, 회원의 증가, 연구분야의 다양화를 특징으로 하는 시기이다.



    1.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성격



    실험 심리학 연구실이 분트에 의해 개설되어 1879년에 공식적으로 명명되었을 때, 그 연구의 내용은 감각 및 지각을 위주로 하였다. 분트는 사고나 언어와 같은 문제들은 실험심리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에빙하우스, 기능주의 심리학자, 형태주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실험심리학의 대상은 기억, 학습, 언어, 사고와 문제해결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오늘날 실험 및 인지 심리학에 포함시키는 이들 영역들은 인간 심성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이를 다루는 실험심리학은 심리학의 기초분야이자 핵심분야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내외의 표준적인 교과서들은 그 내용의 절반 이상을 감각, 지각, 학습, 기억, 언어, 추론, 문제해결 등 실험 및 인지 분야에 할애하고 있다.

    인지 심리학은 1920년 무렵에 등장한 행동주의에 의해 상당한 기간 그 연구가 위축되었으나, 1950년대에 시작된 인지주의 혁명에 의해 다시금 심리학의 중심으로 복귀하게 된다. 여기에는 정보처리이론과 촘스키의 언어이론이 큰 기여를 하였다. 이제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 심리학의 주제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인지심리학은 좁게는 기존의 실험심리학적인 연구를 크게 진전시켰으며, 넓게는 심리학의 기타분야의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또, 인지심리학은 언어학, 철학, 신경과학, 전산학 등과 공조하여 지식의 문제를 해명하는 학제적인 학문인 인지과학을 탄생시켰다. 인지심리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활성화된 영역이다. 80년대에 들어와 등장한 연결주의 파라다임은 정보처리이론과 함께 마음을 보는 틀을 더욱 정교하게 하였다. 인지심리학의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정서, 지능, 의사결정, 인식기초론 등의 분야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인지 심리학의 정착과 확대에 따라 인간-기계 상호작용, 자연언어처리, 학습, 교육 등의 응용적 분야에서의 활동도 주목을 받고 있다.



    2.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태동기(1946-1967)



    해방이전(   -1945)  1946년에 한국심리학회가 발족하였을 당시,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다 당시의 일본심리학의 틀안에서 심리학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일본심리학은 구성주의에 바탕한 감각과 지각의 연구를 주로 하였으며, 1930년 이후에는 형태주의 심리학도 수용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의 심리학을 세운 주역들이 학생시절에 노출되었던 심리학은, 구성주의적 배경을 가진 실험심리학이 위주였을 것이며, 그 이외에 형태주의 심리학과 조건반사이론 등이었을 것이다(차재호, 1976). 당시 서울에 있던 경성제국대학은 전형적인 일본의 심리학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던 곳으로 초창기 한국심리학의 구성원은 여기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하였다.

    해방전에 한국인이 남긴 실험심리학 분야의 업적은 희소하다. 그것은 그 당시의 식민지적 상황이 한국인이 심리학을 계속하기에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순덕과 이진숙만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학부 졸업 후 심리학과는 관계없는 곳에 취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었다. 고순덕과 이진숙은 경성제대의 조수가 되어 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근접하였다. 이진숙은 학부에서 「조선아동의 색채호오에 관하여」를 학위논문으로 제출하였으며 이것을 후에 일본심리학회에서 발표하였다. 그리고 경성제대의 조수(4년간 재직)로 재직하는 동안 「비둘기의 계수능력에 대한 실험」이란 연구를 경성심리학휘보에 게재하였다(1934년).  이것은 쿠로다의 지도 하에 수행한 것으로서 조건반응을 이용하여 비둘기의 계수능력을 조사한 것이었다. 이의철(1936년)은 인삼이 쥐의 미로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경성심리학휘보에 발표하였다. 경성제대의 조수였던 고순덕은 일본 立敎대학에서 학부학위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경성제대에 와서 아마노의 조수를 하였으나, 1945년 이전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문헌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이 격화된 중이라, 경성제대에서도 순수 학문연구가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아마노와 함께 해방 직전까지 몽골 일대를 돌면서 각 인종의 지능, 품성 등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해방 후(1946-1967)  차재호(1976년)에 의하면, 해방 당시 현 서울대학교에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심리학 실험시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나은 (혹자는 동양제일이라고 함) 실험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실을 이용하여 어떤 연구를 하기에는 당시의 사회사정이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또, 그러한 시설을 가동시킬 만한 경제적 지원, 전문적 인력 등도 부족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해방 후에 유입된 미국심리학의 영향이 구조주의에 입각한 일본류의 실험심리학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게 하였을 것이다. 차재호(1987)는 해방직후의 교수와 학생들이 형태주의와 초기 조건반사이론에 경도되어 있었으나 약 5년뒤에는 행동주의와 정신분석학, 통계적방법, 심리측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심리학에 완전히 물들어 버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어쨌든 경성제대의 실험기구들은 해방 후 제대로 이용되지 못한 채,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망실 또는 파괴되었다.

    해방직후에 다수의 학자들은 실험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의 기초로서 실험심리학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실험심리학이 정착을 하는데 실패한 것은, 초기의 학자들이 실험 심리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불안정하였으며, 심리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이들을 실험심리학의 연구에만 종사할 수 없게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실험심리학자들이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각종 검사의 제작 등에 참여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해방직후부터 50년대의 말에 이르는 시기는 아이덴티티 탐색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주제 또는 하나의 분야에서 꾸준하게 연구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처음에 실험심리학으로 출발하였던 사람들의 다수가 나중에 다른 분야로 넘어가게 된다. 예컨대, 서울대의 이진숙은 실험심리학을 매우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50년대 중반에는 성격심리학의 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이의철은 50년대부터 서울대의 실험심리학을 이끌었으나, 그도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직업적성에 관한 연구를, 1969년부터 1973년까지는 학생과 성인의 가치관 연구라는 쪽으로 넘어간다. 또, 실험심리학을 지향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연구의 터전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두뇌유출”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고순덕과 김인섭이 그 예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고순덕은 6,70년대에 지각 분야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고, 캐나다에 정착하여 이제는 Insup Taylor로 더 알려진 김인섭은 독서심리학의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해방이후 한국전쟁, 4?19, 5?16과 같은 비극적 사건으로 점철된 이 시기에는 사회적 불안정에 기인한 연구의욕의 저하 및 연구지원 태세의 부족 등으로 연구다운 연구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대의 중반에 들어서면 서서히 체계를 갖춘 연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전문적인 심리학 잡지가 발간되기 이전이므로, 이들 연구는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된 것이거나 각 대학의 논문집에 실려 있어서 현재로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아니하다.

    1949년까지는 아무런 연구물이 남아 있지 않다. 50년대에는 연구물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1950년에 고순덕이 Brighouse와 공동으로 American Psychologist에 미적판단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이것이 해방후 최초의 심리학 연구라고 한다(차재호, 1976). 고순덕은 1956년에 다시 도미하여 1959년에 하버드대학에서 심미적 판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나, 귀국하지 아니하고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음악적인 자극에 대한 심리적 반응을 정신물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하였으며, 이후 정신분열증 환자의 기억 연구, 문화간 비교 연구 등으로 연구분야를 넓혀갔다. 그러나 그가 국내의 학자와 학술적 교류를 하였다는 기록은 없고 따라서 국내의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연구에 영향을 준 흔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는 말년에 박광배(충북대)를 지도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한국심리학에 대한 마지막 기여였다고 할 수 있겠다(김은우, 1993).

    50년대에는 지각에 관한 연구들이 단속적으로 나타난다. 주동혜(1954)가 고순덕의 지도로 심미적 판단에 대한 문제를, 정양은(1954)이 時間지각에 관한 문제를 석사학위논문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한국 실험심리학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주동혜는 출국하여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양은은 이 분야에서 더 이상의 실적을 남기지 않고 다른 분야로 넘어갔다. 그러나 정양은은 1964년 스탠포드대학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 수리적 학습모델을 소개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수리적 심리모델을 적용한 실험연구(이정모, 1966년)가 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1958년에 장동환은 「색채공간의 척도화에 관한 일 연구」를 발표하였으며, 1964년에는 Osgood의 의미미분법을 사용하여 한국어 형용사에 대한 의미론적 구조 분석을 시도하였다. 분석은 매우 방대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전자계산기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전산기를 사용한 최초의 심리학 연구이다. 60년대 말에 장동환은 타자기판의 표준화와 관련된 인간공학적 연구와 산업심리학의 교육에 집중하게 된다.

    50년대까지 단속적이었던 연구들이 60년대 중반이 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 연구들은 한국어 어휘의 의미분석, 연상, 단어인지, 언어학습 등과 같은 비교적 고차수준의 인지를 다루었으며, 신행동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67년에 이의철은 「연상의 메카니즘에 관한 연구: 한국어 동사의 분석」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모두 6개의 실험으로 되어 있는 그의 박사학위논문이다. 1천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얻은 한국어 3음절 동사의 연상가 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해방 직후에 잠시 보였던 지각에 대한 관심이 엷어지고 언어 및 언어학습에 대한 관심이 대두하는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이러한 경향은 70년대에도 지속되어 한국 실험심리학의 한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나, 우선 지각에 대한 연구들이 정밀한 장비와 시설을 필요로 한다는 점, 반면 언어재료를 사용하는 연구들에서는 고가의 장비와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이외에, 신행동주의의 연구 분야 중의 하나인 언어학습에 대한 연구의 유행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잘 나타나는 것이 조명한과 남우정(1965년)에 의한 「우리말 무의미 철자의 구성과 그 척도화된 의미가 측정」, 이의철과 조명한(1966년)에 의한 「언어심리학의 개관」 및 「언어지각에서 성군화의 요인으로서의 문자구조, 의미성, 발음」, 그리고 조명한(1967년)의 「한글표기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 등이다.

    이 시기에 있었던 사건 가운데 특기할 것은 한국어의 어휘 특성에 관한 계량적 자료가 수집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최현배의 노력으로 1956년에 「우리말 사용잦기 조사표」가 문교부에서 발간되었다. 그리고 장동환이 한국어 형용사의 의미분석표, 이의철이 동사의 연상기준표 등을 작성하였다. 또, 서울대학교 심리학 연구실이 1967년(또는 1970년, 1975년)에 「우리말 동사 사용빈도 조사」 (이것은 국민학교 및 중학교용 국어과 교과서를 대상으로 함)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자료는 언어를 사용하는 연구에서 기본적인 자료로서, 이러한 작업이 매우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작업이 계속 연구에 의해 보완 내지 충실화되었어야 함에도 이 이후에 오랫 동안 중지되었다.


    1)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교육


    이 시기에 학부에서의 실험 및 인지에 대한 교육은 실험심리학과 학습심리학이라는 과목을 통해서였다. 지각이니 인지니 사고니 언어니 하는 과목들은 보이지 아니한다. 이것들은 모두 실험심리학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과목으로서 교수되었다.  참고로, 1966년의 고려대 심리학과 교과과정을 보면 넓은 의미의 실험심리학에 넣을 수 있는 과목으로서 인체생리학(3학점), 생리심리학(3), 실험심리학(6), 심리실험(4), 학습심리학(3) 등이 보인다. 1962년도의 성균관대학교(당시 심리학과) 학부 교과과정에는 심리학실험(A)(B), 실험심리학(A)(B), 동물(생리)심리학 등이 있었다.


    2) 각 대학에서의 연구 동향


    이 시기에 이루어진 연구의 다수는 학위 논문으로서 제출된 것이다.  박사논문은 서울대의 이의철(1968년)이 유일하다. 석사논문은 서울대가 7편, 중앙대가 2편, 이화여대가 1편이다. 서울대에서 이 시기에 실험 및 인지 분야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정양은(1954년), 박창진(1956년), 이현수(1961년), 조명한(1963년), 이관용(1964년), 임능빈(1964년), 윤병희(1965), 남우정(1967) 등이다. 중앙대에서는 신평식(1961년), 홍성철(1965년), 이화여대에는 주동혜(1954년)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까지 전국 5개 대학에 제출된 석사학위 논문의 편수는 전부 59편인데 이중 10편이 실험 및 인지 분야의 것이니, 비율로는 그다지 높지 않다. 다만 다수가 서울대에서 나왔으며, 서울대의 경우 거의 반수가 실험 및 인지 분야이다. 서울대에서는 1962년 5월부터 1964년 12월까지 강사, 조교, 학생들의 모임인 토요세미나회가 120여회의 세미나와 250여회의 강독회를 가지는 등 열심히 활동하였다. 여기에서 다루어진 주제의 상당수는 실험 및 인지 분야였으며, 임능빈, 차재호, 조명한, 이장호, 이춘재, 김화중, 김중술, 이관용, 윤병희, 윤호균, 남우정, 권성자, 이훈구 등이 참가하였다. 이들 중 실험 및 인지 분야에서 그 후에도 지속적 활동을 전개하는 사람은 조명한과 이관용이다.


    3) 저작 및 간행물


    이 시기에는 실험 및 인지 분야에서는 한 권의 저술도 번역서도 볼 수가 없다. 아마 저술을 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연구가 필요할 터인데 아직은 그만큼 축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서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약간 의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심리학 특히 실험 및 인지에 대한 사회의 의식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갈 수 있는 것이다. 번역서들이 팔릴 만큼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정착기(1968-1981)



    1968년에 한국심리학회지가 발간됨으로써 연구물들이 공개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학회지가 발간된 1968년을 전후하여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연구들을 거의 매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시발은 역시 학회지 발간 2,3년전에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모임의 활동이었다. 이 모임은 당시에 유행하던 신행동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 이외에 형태주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차재호, 1976). 그러나 새로운 심리학, 즉 인지주의의 영향은 아직 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70년대 이후 시기의 특징은 실험 및 인지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의 등장과 인지주의의 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시기의 학자들이 전공에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지 못하고 외부 상황에 따라 여러 분야를 옮아 다녔음에 비해,  이 시기부터는 명실 상부한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전공 학자들이 소수이지만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60년대 말에 대학에 자리를 잡고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게 되는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분과회원들의 다수를 이들이 지도하였다.

    50년대에 시작된 인지혁명의 물결이 한국에 상륙하여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 즉 7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69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대학원 강좌 ‘언어심리학’이 이의철과 조명한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 이전에는 인지심리학이 무엇인지, 어떠한 움직임이 있는지, 어떠한 관련 문헌이 있는지가 국내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1972년에 조명한과 이정모에 의해 인지심리학 분야의 잡지 Cognitive Psychology(창간호 부터)와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1972부터)가 최초로 국내에 도입되고, 김정오에 의해 Neisser의 Cognitive Psychology가 회원들에게 소개되었다. 이 당시에 처음으로 인지심리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토론하던 모임은 조명한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과 1969년부터 서울대 문리대에서 있었던 토요모임(김정오, 이만영, 이정모 등의 석사과정생 중심의 모임)에서였다. 1970년대 초에 이미 조명한(1973년)은 언어 습득에 관한 연구에서 촘스키의 이론을 검토하였고, 김정오(1973년)는 기억에 대한 정보처리 이론을 개관하였는데, 이후 수년 이내에 인지주의는 급속하게 확산된다. 이러한 경향은 70년대 말에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의 귀국에 힘입어 1980년대 초에는 실험 및 인지 분야를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1) 학회


    1977년에 실험심리 분과회가 설립되었다(이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1982년에 발간된 요람에 의하면, 1977년 3월17일에 이사회에서 분과회 설립의 건이 정식으로 발의되었으나 이사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여 분과회 설립이 좌절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의 요람에 보면 1977년 3월17일의 이사회에서 인준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또 1982년의 요람에는 실험심리분과회가 1977년 11월5일의 정기총회에서 분과회 활동보고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실험심리분과회는 본 분과회의 모체로 볼 수 있으며, 지각, 학습, 인지 등의 분야 이외에 생물 및 생리 분야의 회원들도 설립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활동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다.

    1980년에는 인지심리 분과회가 창립총회를 가지고 정식으로 발족하였으나, 생리  및 학습 분야의 학자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여전히 실험심리 분과회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회원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러나, 실험심리 분과회와는 달리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여기에는 조명한, 김정오, 이정모가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월례발표회 이외에 연차대회 등과 같은 활동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70년대의 실험 및 인지 심리학자들은 분과회 활동에 그다지 열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 않으며, 분과회 활동이 충분히 이루어질 만큼의 인원도 없었다. 대다수의 전공자들은 자신의 대학과 인접대학에의 인지심리학 강의의 부담으로, 그리고 실험심리 분과회와 인지심리 분과회의 미묘한 갈등에서 오는 부담으로 인해 분과학회의 활동을 못하고 모학회에서의 활동에 만족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1982년의 실험 및 인지 분과회의 성립으로 급변하게 된다.


    회원동향 1965년에는 총 75명의 한국심리학회 회원중 실험 분야 전공자가 8명이었다. 1976년에는 총 140명 중 실험심리학(학습, 생리, 지각을 포함) 분야의 회원이 8명이었다. 약 10년간에 한국심리학회 회원의 수는 두배로 증가하였으나, 실험 분야 전공자의 수는 변동이 없다(차재호, 1976). 그러나 1982년에 이르면 실험 및 인지 전공 회원의 수만 18명으로 증가한다.

    1968년에 이관용이 서울대 학생지도연구소의 전임이 되었으며, 1969년에는 조명한이 서울대 신문대학원의 전임이 되었다. 이들은 1975년의 서울대 캠퍼스 이전에 따라 행해진 조치에 의해 심리학과에 소속하게 되었다. 이만영은 행동과학연구소를 거쳐 1979년에 효성여대(현 효성가톨릭대학)에 부임하였다. 1979년도를 기점으로, 이정모, 김정오, 이영애, 김경린 등 해외에서 여러 학자들이 귀국하였다. 이정모는 성심여대(현 가톨릭대학)에, 김정오는 이화여대에, 이영애는 이화여대에 각각 부임하였다. 김경린과 김영채는 처음에는 교육학과에 소속하였으나 김영채는 1979년에, 김경린은 1980년에 소속 대학에 신설된 심리학과로 옮기었다. 그 무렵 경향각지의 종합대학에 심리학과가 신설되는데, 이 신설된 학과에 각 대학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거나 수료한 사람들 옮겨가게 된다. 신현정이 부산대학으로, 박태진이 전남대학으로, 서창원이 충남대학으로, 김유진과 이승복이 충북대학으로 부임하였다.

     

    2) 각 분야 연구의 개관


    창간이래 1981년까지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된 실험 및 인지 관련연구는 모두 13편이다. 주제별로는 언어(이의철, 조명한), 기억(이정모, 조명한, 김유진, 김정오, 오만석), 언어학습(이관용, 이의철, 김경린)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남표와 이수원(1970년)이 아동의 연상빈도표를 제작하였으며, 이관용(1976년)이 한국어 명사의 심상가를 측정하였다.

    70년대 중반까지는 언어 분야에서 많은 연구들이 나타났다. 조명한은 연상에 대한 그의 연구를 1972년에 제출된 학위논문 「단어 자유연상에 대한 상대적 거리의 개념과 연상적 의미」에서 마무리하고 곧, 아동의 언어획득에 대한 연구로 이동한다. 전자에도 어느 정도 새로운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나타나 있으나, 후자는 확실하게 촘스키의 파라다임을 의식하고 수행한 연구였다. 정복선과 이승복이 그의 지도학생으로서 이 연구들에 참여했다. 조명한을 중심으로 한 이 연구들은 후에 「한국아동의 언어획득 연구: 책략모형」(1982년도)이란 책으로 엮어진다. 1970년대의 후반이 되면 그의 관심은 다시 한국어의 문장이해 쪽으로 옮겨가는데, 그가 지도한 김영진, 이광오, 이현진, 김영란의 석사학위논문은 모두 문장이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언어학습에 대한 연구로는 이상로와 김경린(1970년)과 이관용(1971년)이 있다. 전자는 언어학습과 강화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의 연구에서는 아직 행동주의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관용은 1971년 무렵부터 일련의 연구를 통하여 언어학습의 매개과정을 중심으로 이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특히 그는 정서와 정보처리의 관계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1974년에는 학습재료의 감정가를 측정하는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학습재료의 구체성과 심상성이 기억수행에 미치는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가 1976년에 행한 한국어 명사의 심상성에 대한 측정은 이후의 많은 연구들에 의해 사용되게 된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은 1980년에 제출된 「情的 정보처리에 관한 실험연구」로 일단락을 짓게 된다.

    기억에 관한 연구들은 1970년 무렵에 잠깐 보인다. 주로 단어회상에 관한 연구로서 조명한, 김유진, 및 이정모(1969년)의 상대적 거리의 효과, 이정모와 조명한(1970년)의 문맥구조도와 마음갖춤새의 효과, 서창원(1975년)의 단기기억에서의 역행간섭의 효과 등이 발표되었다. 70년대 후반이 되면 기억에 관한 연구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 연구들은 미국에서 갓 돌아온 학자들에 의한 것으로 정보처리 이론을 채용한 것이 특색이다. 김정오와 오만석(1979년)의 단기기억의 용량을 결정짓는 심리적 기제들에 대한 연구, 이정모와 D.J.Murray(1980년)의 회상단서의 심상가가 회상에 미치는 효과, 김경린(1981년)의 정보처리의 수준과 전진금지(proactive inhibition)효과의 배제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후자는 김경린의 학위논문인데 김경린은 이후 1989년에 작고할 때까지 기억의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였다.


    3) 학부 및 대학원의 교과과정


    70년대에는 실험심리학 과목이 분화되어, 학부 및 대학원에 지각, 인지, 언어, 사고 등의 과목이 등장한다. 1969년에 서울대의 대학원 과목으로 '언어심리학'이 개설되고, 1973년에 한양대 교육학과의 학부과목으로 사고심리학이 개설되었다.

    차재호(1976)가 조사한 1976학년도 각 대학 심리학과의 학부 교과목(서울대, 고려대, 중앙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목록을 살펴보면, 「학습심리학」은 모든 대학에 개설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각」, 「인지과정」, 「언어」는 서울대에만 개설되어 있었다. 그 대신 고려대, 중앙대, 이화여대에는 「실험심리학」이 개설되어 있었다. 성대에는 「인간공학」이 개설되어 있었다. 석사과정에 실험 및 인지 관련 과정이 있는 대학은, 서울대(학습, 언어), 고려대(실험심리), 성균관대(학습심리)이다. 이대에는 관련과정이 없으며, 중대는 전공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4) 대학에서의 연구(1968-1982)


    70년대에 실험 및 인지 분야의 교수요원이 있어서 연구와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은 서울대이다. 물론 이 시기의 끝에 도달하면 다른 대학에도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전임교원이 부임하지만, 그들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다음 시기이다.

    서울대에서 이 시기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조명한(1972년)과 이관용(1980년)이다. 1975년까지 서울대에서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석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김유진(1970년), 이태형(1970년), 김정오(1971년), 이정모(1971년), 이현걸(1972년), 홍승철(1972년), 정복선(1973년), 정찬섭(1975년) 등 8인이다. 1976년부터 서울대 석사과정 5개 전공중에 학습심리학, 언어 및 사회심리 전공과정이 생기었다. 서울대는 1975년에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학습, 언어, 감각지각의 실험실을 확보하고, 대학원에는 고급지각심리학, 고급학습심리학이 핵과목으로 설정되었다. 1976년에 영국차관으로 실험기구를 도입하였는데(4K메모리를 가진 소형컴퓨터, 입체경, 청력계, 색채혼합기 등), 이것은 해방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차재호, 1987).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후에 실험 및 인지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신현정(1978년), 이승복(1979년), 도경수(1980년), 김영진(1981년) 등 4명이다.

    고려대에서는 박영호(1968년), 이만영(1969년), 서창원(1975년), 그리고 이현우(1980년)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에서는 석문상(1973년)이, 성균관대에서는 권기덕(1969년)과 이주용(1977년)이, 그리고 이화여대에서는 안덕자(1971년)와 김영미(1975년)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는 인지발달에 관한 연구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유호정(1971년), 이기영(1974년), 송영혜(1974년), 하정화(1978년) 등이 인지발달 및 언어발달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5) 출판활동


    이 시기의 저술들은 교재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번역이다. 학습에 관한 책들이 가장 먼저 발간되었는데, 심리학자뿐 아니라 교육학자에 의해서도 많은 저서와 역서가 출판되었다. 심리학자가 저술한 책으로는 이관용이 1977년에 번역한 「학습심리학」(원저: J.E.Deese 등, The psychology of learning) 등이 있다. 스키너의 책들도 몇권 번역되었다. 김기석은 「행동분석」을(1978년) 번역하였다. 그외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는 스키너의 저서로서 이장호가 「월덴투」를(1979년), 차재호가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1982년)를 번역하였다.

    1973년이 되면 학습 이외의 분야에서도 처음으로 번역서들이 나온다. 이 책들은 益文社에서 「현대심리학전서」(Foundations of modern psychology series)로서 번역 출간되었는데 여기에 포함된 실험 및 인지 관련 도서들은 들면 다음과 같다. 이창우가 지각(원저: J.E.Hochberg, Perception)을, 이태형이 감각심리학(원저: C.G.Mueller, Sensory psychology)을, 조명한이 언어와 사고(원저: J.B.Carroll, Language and thought)를, 이관용이 학습(원저: S.A.Mednick, Learning)을, 김정오가 심리학적 연구의 본질(원저: R.Hyman, The nature of psychological inquiry)을 각각 번역하였다. 이 책들은 1978년에 재판이 나왔다.

    이관용, 이태형, 및 정복선은 1974년에 Lindsay 와 Norman의 인지심리학 교과서인 Human Information Processing이란 책을 번역하였다. 이 책은 정보처리이론에 근거한 심리학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언어심리학 분야의 책들은 간간이 언어학자들에 의해 저술 또는 번역이 되었다. 1979년에 조명한이 낸 「언어심리학」은 심리학자에 의한 이 분야 최초의 저술이며, 교과서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4.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발전기(1982-    )



    1982년은 본 분과회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해이다. 우선 이 해에 본 분과회가 성립하였다. 실험 및 인지 전공자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의 자극을 받고 조직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지각과 인지심리학」이라는 주제로 심리학연수회가 개최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 심리학회 창설 이래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강사가 12명에 참석 인원이 사흘간 연 160여명에 달하였다. 이후 심리학 연수회가 한국심리학회의 연례 주요행사로서 자리잡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행사는 인지주의가 현대심리학의 가장 핵심적인 흐름임을 과시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인지심리학이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실험 및 인지 전공자들의 활력과 조직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행사를 조직한 이만영, 이정모, 김정오는 한국심리학계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으며, 이후 본 분과회는 한국심리학회의 운영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된다.

    연구분야도 다양하여지는데, 그것은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는 인원의 증가와 각 대학에서 배출된 차세대 학자들의 증가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무하다시피 하였던 지각과 기억 분야에 연구자들의 수가 대폭 증가하였다. 80년대에 이미 색채지각, 형태지각, 입체시, 운동지각, 주의, 기억과정, 심상, 덩이글(Text) 이해, 자모지각, 단어인지, 언어습득, 사고 등의 분야에서 연구물이 나타나며, 90년대로 오면, 제2언어 학습, 정서, 음악, 음성지각, 인지공학, 작문, 문제해결 등으로 더욱 더 다양하여진다.

    이 시기 연구의 주요 파라다임은 정보처리 모형이다. 그러나 80년대의 중반을 지나면, 연결주의 모형을 채용하는 연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찬섭을 필두로 하여, 한광희, 이광오, 김재갑이 연결주의 모형을 다루거나, 이를 정보처리 모형과 대비시키는 연구를 하였다.

    연구의 환경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개선되었다. 80년대 중반이 되면 컴퓨터가 실험 및 자료의 처리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개인용 PC의 이용은 연구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국내 최초로 PC를 사용한 실험심리학 연구는 1983년의 고려대의 최상섭의 석사논문 연구에서였다. 고려대(1985년)에서 번역한 Conduit사의 지각, 기억, 인지 실험용 소프트웨어가 보급되어 학부생들의 실험실습교육에 많이 쓰였다. 80년대에는 아직 소수의 대학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험 심리학 관련 기기와 설비가 충실하여진다. 순간노출기와 PC같은 것은 이미 80년대에 많은 대학에 구비되었으며,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안구운동측정장치, ERP기록장치와 같은 고가의 정신생리학적 장비의 구입이 각 대학에서 추진되었으며, 이를 이용한 연구들도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 90년을 전후하여 연구비의 종류와 액수가 다양하여지고 많아져서 연구수행의 기본적인 여건은 계속 향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타 학문과의 교류도 활성화되었다. 인지과학에 속하는 언어학, 철학, 전산학 등의 분야의 연구자들과의 교류가 빈번하여진다. 1987년에 탄생한 인지과학회의 창립에는 본 분과회원들이 주도적 활동을 하였으며, 그 결과로서 타 학문과의 연대에 의한 공동연구, 타학문분야로의 진출 등이 9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분과회원의 대다수가 인지과학회의 회원으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인지과학회의 세미나, 연차대회에 다수가 참가하고 있으며 인지과학회지를 통한 논문의 발표 등도 거의 매호마다 볼 수 있다. 이러한 교류를 바탕으로 90년대에는 각 대학에 인지과학 협동과정이 개설된다. 1995년에 성균관대(석사과정)와 연세대(석사 및 박사과정)을 시작으로 서울대에도 석사과정이 개설되었으며, 1996년에는 부산대에도 석사과정이 개설되었다.

    실험 및 인지 전공자들은 심리학의 다른 분야들에 대해서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엄밀한 연구방법론에 대한 강조가 그러한 기여 중의 하나일 것이다. 1983년의 제2회 심리학연수회에서는 실험 및 인지 전공자들이 주축이 되어 심리학의 방법론을 강의하였다. 이후에도 한국심리학회 주최로 매년 심리학연수회가 열리고 주제로서 각 분야의 방법론을 다루어졌는데, 그 모델은 제2회 심리학연수회였으며, 또 본 분과회원들이 강사로서 초청되곤 하였다. 1988년의 연수회 주제는 「실험연구방법론」으로서 김경린, 김정오, 이만영, 이정모, 정찬섭 등이 강의하였다. 1983년과 1988년의 연수회 내용은 1988년에 단행본 「실험심리연구법총론」으로 출판되었다.


    1) 학회


    1982년 2월에 실험심리분과와 인지심리분과가 통합하여 실험 및 인지심리 분과를 창설하였다. 여기에는 생물 생리 분야 전공자들도 참가하였으며, 1989년에 이들이 생물생리분과를 창설하여 분가할 때까지 같이 활동하였다. 1994년부터는 이사회를 다시 구성하여 더욱 많은 사람이 학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학회원 현황 1982년에 실험 및 인지분야를 전공으로 하는 분과회원의 수는 18명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1988년에는 37명으로 증가한다. 1989년에 생물 및 생리 심리학회가 발족되어 생물 및 생리 분야의 회원이 분가하여 나간 뒤의 회원수는 49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 회원의 수는 배가되는데, 1996년 8월 현재 분과회에 등록된 회원의 총수는 119명이다(이들 중 일부는 타 분과회에도 소속된 사람들이다). 그 분포는 대학교원 57명, 연구소 4명, 대학강사 14명, 박사과정 재학 19명, 석사과정 재학 15명, 기타 10명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면 분과회원들이 연구소 등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9월 1일 현재 연구소에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된 회원은 김가원(KAIST 인공지능연구소), 김재갑(LG전자 커뮤니카토피아 연구소), 최상섭(KAIST), 최영주(삼성보험연구소), 손영숙(삼성인간생활연구소), 김미라(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남기춘(고려대 언어정보연구소) 등이다.


    학술지 간행 1989년에 분과학회지가 창간된 이래 8권 1호까지 간행되었다(1996년 8월31일 기준). 1994년까지는 일년에 1권씩 그리고 각 권은 1호로서 발간되었으나, 1995년부터는 날로 증가하는 연구물들을 게재하기 위하여 년간 2호를 발간하고 있다. 또한, 1995년에는 심사제도를 개선하여 심사위원에게 심사료를 지급하기 시작하였으며, 편당 2인의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체제가 갖추어졌다. 1996년 현재,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의 저자는 면당 1만원의 게재료를 납부하고 있다.


    사업추진 인지심리 분과회 창립과 함께 시작된 월례발표회는 실험 및 인지 분과회의 탄생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나 1991년 이후에는 열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여름연구회와 연차대회가 회원들의 연구 발표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여름연구회는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원래의 구상에 의하면, 여름연구회는 젊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주 연구 내용과 방법을 널리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다. 발표자는 7-10명으로 하고, 발표시간은 1인당 60-90분, 토의시간은 30분 정도로 하고, 발표자의 자격은 박사과정에 있거나 박사학위를 지닌 실험 심리학자로서 자기 연구주제에 관한 개관(review)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고, 발표내용은 자신의 연구주제의 내용에 관한 이론적 개괄을 제시하고, 그 주제에 대한 방법론적 특성과 문제점을 제시(자신의 실험결과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원래의 구상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거의 그대로 실현되어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발표 내용을 수정 보완 재편집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려던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1994년에 서창원 회장의 발의에 의해 용어정리위원회(위원장: 박태진)가 다시 구성되었다. 용어정리는 이미 1982년의 한국심리학회 정기총회에서도 거론되어 심리학 용어사전 편찬 추진이 특별사업으로 상정되었었고, 여러 분과회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었으나 결실을 이루지 못하였다. 본 분과회에서도 1990년 8월의 전국 실험 및 인지 전공교수 모임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어 용어정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어떤 실적을 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재구성된 위원회는 실험 인지 용어집 발간을 일차목표로 하여 1994년부터 활동 중이다. 1995년 여름연수회에서 용어정리와 관련한 토론회를 가졌으며, 용어문제에 대한 회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2) 학술모임


    인지과학 공동연구준비 모임(1986-1987) 인지과학 공동연구준비 모임의 결성에 참여한 본 분과회 회원들은 한국인지과학회의 창립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그것을 통해 인지 심리학의 위상을 높이고 인지 심리학의 활동무대를 넓히는 데 공헌하였다. 1986년 5월 28일에 대우재단의 지원을 받아 인지과학 공동연구 준비모임(연구자: 조명한, 이정모, 정찬섭, 소흥렬, 정대현, 이기용, 이익환, 이정민, 이일병)이 결성되었다. 철학, 언어학, 전산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참가하였으나, 이 모임은 애초부터 심리학자들이 주도하여 결성된 것이다. 1985년 11월경 조명한과 이정모가 대우재단과 접촉을 개시한 후 여러 차례의 접촉 끝에 대우재단의 지원을 설득해 낸 결과였다. 대우재단은 애초 이 모임을 “주제별 논문집 연구”의 형태로 규정하려 하였으나 공동연구모임의 주장대로 “공동학술연구”의 형태로 결정이 났다. “인지과학 공동 학술 연구”는 1986년 9월에 제1회 연구 발표회를 개최하여 1987년 3월까지 14회의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그리고 6월 13일에 “인지과학 심포지움” 개최하였으며, 심포지움 종료후 참석자들이 대우빌딩 중앙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인지과학회를 창립하기로 결정하여 당일에 한국인지과학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초대회장에 소흥렬, 총무이사에 이정모, 편집이사에 이익환, 연구이사에 김정오, 재무이사에 정찬섭, 홍보이사에 이병혁이 선임되었다. 1988년 6월 30일에 구성된 편집위원회의 위원 16인 중에는 심리학을 대표하여 김정오, 이정모, 정찬섭, 조명한이 참가하였다. 1988년 7월 1일 현재 심리학(49), 언어학(16), 사회학(6), 수학(3), 인공지능(전산한, 전자공학)(88), 신경과학(13), 인류학(2), 신문방송학(6), 철학(24), 교육학(12), 산업공학(2) 등의 분야에 걸쳐 총 회원수는 232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심리학 전공 회원 49명이고 그 대다수가 본 분과회 소속이다.


    인지공학연구 모임(1995-   ) 인지공학은 인간-기계 상호작용,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의 영역에서 인지 요인의 분석 및 응용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모임의 목적은 첨단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여러 국면에서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편의를 증대시킬 수 있도록 실험 및 인지심리학적 (넓게는 인지과학적) 지식과 기법의 응용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모임은 1995년 9월부터 1996년 8월까지 대우재단의 콜로키움 지원(대표자: 전남대 박창호)을 받았으며, 1995년 9월 아주대에서의 첫모임 이후 매월 1회 모임을 가져왔고 현재도 계속하고 있다. 참가자는 곽호완, 권오식, 김성일, 김영진, 김재갑, 김진우, 남기춘, 변은희, 박창호, 이건효, 이재호, 이종구, 최상섭, 한광희, 황상민(이상 가나다 순) 등이다. 초반기의 활동은 몇몇 주요 text와 논문에 대해 토론하고 상호 간에 인지공학 관련 정보들을 교환하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이를 바탕으로 인지공학의 개관서를 준비중에 있다. 앞으로 산업체나 연구소, 기타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인지공학적인 연구를 활성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3) 각 분야 연구의 개관


    감각 및 지각 이 분야의 연구들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드문드문 나타났으나 연구자들의 관심의 변화, 출국 등으로 지속되지 못하였으며, 한국심리학의 한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한 동안 전무하다시피 하였던 이 분야의 연구들은 1980년 무렵부터 왕성하게 활동이 전개된다. 그것은 이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의 귀국에 힘입은 바 크다. 1979년에 귀국한 김정오(서울대)는 정보처리이론에 입각하여 초기시각과정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을 실시하여 왔다. 그의 실험실에서는 국소처리와 전체처리, 주의 과정, 세부특징 분석과 통합의 문제 등이 다루어졌는데, 자극확률효과를 중심으로 지각과정에 미치는 인지과정의 효과(1983년 오길승과 함께), 지각표상의 형성에 개념주도적 처리와 자료주도적 처리(1983년, 이양과 함께), 역에서의 시각정보처리(1989년), 주의기제가 자극확률효과 및 선행성에 미치는 영향(1990년), 전역 및 국지 선행성(1991년, 박창호와 함께), 착각결합(1994년, 이경희와 함께), 색깔반복맹(1995년, 박민규와 함께), 착각명제결합(1995년, 이화여대 한지은과 함께) 등에 대한 연구가 다루어졌다. 정찬섭(연세대)은 1984년에 귀국하였으며, 그가 담당한 연세대 실험실에서는 가현운동, 색채지각, 착시, 입체시 등과 같은 전통적인 주제들이 연구되고 있다. Hermann grid착시(1985년, 박미자와 공동), 착시를 통해서 본 심상의 표상특성(1989년, 유명현과 공동), 정체와 유목의 초기정보처리(1987년, 홍성희, 강병근과 공동), 양안접합과 경쟁에 의한 깊이와 단일상 형성(1989년, 이형철과 함께), 자극의 색과 크기가 Glass문양의 지각에 미치는 효과(1990년, 구영애와 함께), 주관적 윤곽의 발생에서 중첩단서와 주의(1990년, 정재훈과 함께), 양측반구에 분할입력된 입체경 자극의 깊이표상(1991년, 감기택과 함께), 자극-반응 양립성이 스트룹 과제수행에 미치는 효과(1992년, 오은미와 함께), 근접 가현운동 방향의 누적효과(1992년, 정우현과 함께), 단폭 및 장폭 가현운동의 상호작용(1993년, 염은영과 함께), 글자의 이중상에 대한 연구(1995년, 박상호와 함께) 등을 발표하였다. 김유진(1995년)은 운동방향과 가현운동의 속도 지각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감각 및 지각의 분야에서는 80년대에 새로운 파라다임들이 등장하는데, Marr의 시각이론과 연결주의 모형이 그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정찬섭의 소개가 있으며(1989년), 후자와 관련해서는 한광희와 정찬섭(1991년)의 역동적 광순응 신경망을 이용한 색채항등성의 구현에 관한 연구가 있다. 색채지각의 연구는 이미 이만영이 70년대말에 시작하였다. 그는 색채 명명법에 의한 심리적 요소색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1983년)를 취득하였으며, 요인분석법을 통한 색채서술어 의미구조의 탐색(1989년, 김영선과 함께) 등도 발표하였다. 그는 한국방송공사의 색채과학연구소와 함께 표준색표집의 제작, 색채용어집의 발간 등에 관여하여 국내 색채과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90년대에 들어오면 젊은 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곽호완은 곡선추적과정(1989년, 김정오와 공동; 1994년), 자극간 거리효과로 본 주의이동의 속성(1994년, 이영애, 이영림과 공동) 등에 대한 연구를 행하였으며, 회귀억제에 대한 연구(1993, 1995년)들을 발표하였다. 홍성희(사망)는 대칭성 지각에 대한 연구(1992년)를, 박창호는 전역 및 국지 정보처리에 대한 연구(1993년)와 순간노출된 형태에서 출현특징의 처리에 대한 연구(1995년)를, 지상현(1993년)은 심미적 지각에 대한 연구를, 그리고 박주용(1995년)은 주의기제와 부적점화효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얼굴재인과 심상에 관한 연구들도 실시되었는데, 김영채(1990년)는 약호와 전략과 정보조건이 얼굴재인에 미치는 영향을, 서영삼이 이상한 심상의 효과를(1994년), 마지현과 윤가현이 정신적 회전에 대한 연구를(1994년) 발표하였다. 그리고 서창원(1991, 1993년)은 장면이해에 대한 연구를, 서영삼과 이만영(1993년)은 속성판단과제에서 그림과 단어의 차이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서영삼(1993년)은 그림과 단어의 항목내 속성 빈도조사를 제시하였다.

    그 밖에 지각에 대한 신경심리학적인 연구들도 이루어졌다. 김홍근(1989, 1992, 1993, 1994년)은 반구비대칭성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행하고 있으며, 메타분석을 이용하여 지각 비대칭 자료를 조사하였다. 차경호(1992년)는 정신지체자와 정상인의 주의과정을 비교하였다.

    시지각에 대한 연구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는 있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 시각 이외의 분야에서도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부산대 출신의 곽세열이 음악지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활동중이며, 반세범도 선율지각에 관한 연구로 연세대에서 석사학위(1991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기타의 감각양상, 미각, 촉각, 후각 등에서의 연구는 전무한 형편이다.


    학습 및 기억 학습 고유 영역에서의 연구는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학습에 대한 관심이 엷어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억이나 지각 등과 같은 영역으로 학습의 문제들이 흡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말에 발표된 문익수와 김진환(1989년)의 운동학습에서의 전이에 대한 연구, 박광배(1989년)의 학습된 행동과 가설검증에 대한 연구는 학습의 전통적 주제를 다룬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이관용, 신현정, 조증열, 이태연 등을 중심으로 범주화에 관한 연구가 아연 활기를 띤다. 이관용(1991년)은 우리말 범주규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차후 연구의 기본자료를 제공하였으며, 범주유형에 따른 사전맥락의 효과(1991년), 그리고 이태연과 공동(1995년)으로 범주사례의 발생빈도추정에 미치는 주의 및 제한된 인출시간의 효과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김혜리(1991년)는 아동과 성인의 존재론적 기본범주를 비교하였으며, 최영주(1992년)는 포함관계 범주화에 관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태연(1993, 1994년)은 자극의 왜곡 및 경험과 범주의 중첩과 크기가 범주화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였다. 신현정은 정의곤란범주 사례의 유목화와 재인에 관한 일련의 연구(1993, 1995 권오영과 함께)를 실시하였다. 또, 조증열은 범주화에서 자극유형과 범주구조의 효과에 대한 연구(1994년), 범주학습에서 상관규칙의 현저성에 대한 연구(1995년)를 실시하였다. 김가원(1994년), 김가원과 김진형(1995년)은 원형(prototype)의 형성 및 변별과정에서 원형의 역할 등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기억을 주제로 한 연구들도 80년대 이후에 활기를 띤다. 70년대 말의 김정오와 이정모의 연구 이후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진다. 이주용(1981년)은 박사학위논문에서 기계적 암기의 장기 파지를 다루었으며, 그 후 회상과 재인에 대한 일련의 연구(1988, 1993년)를 실시하였다. 기억의 개인차에 대한 연구들도 나왔는데, 김영채가 청년과 노년의 기억비교(1982)를, 그리고 김영채와 M.H.Marx가 사건빈도와 자유회상에서 연령, 성별 등의 영향을(1987년) 다루었다. 김영채는 1982년에 「인간학습 및 기억」 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출판하였다. 이것은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여러 연구들과 모형들을 체계적으로 개관한 역작이다. 대개의 연구들은 주로 언어재료를 이용하였으나, 그림재료를 사용한 사용한 연구들도 다수 등장한다. 김정호와 이정모가 그림재료를 자극으로 약호화와 응집성의 문제를(1983년), 김정호가 그림재료에서 약호화-인출합치도와 응집성의 효과를(1984년, 1989년, 1991년) 연구하였다. 김정호(1986년)는 약호화 고유성 원리에 대해서 비판적인 개관을 제시하였으며, 안-밖 합치도라는 독특한 모형을 제시하여(1992년) 기억 및 인지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최영주와 정찬섭(1986년)도 단기기억에 관한 연구에서 그림자극을 사용하였다. 서창원은 그림자극의 표준화를 시도하였는데(1988년) 이는 그 후의 연구들에 귀중한 자료로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기억 분야에서 일상기억의 문제와 암묵?외현 기억의 문제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김수연의 자전적 기억에 대한 연구(1992, 1993년)는 전자를, 박태진(1992, 1993, 1995년), 조증열(1994년), 김미라(1995년)의 연구는 후자를 다룬 연구들이다. 기억연구의 범위와 내용이 다양화하고 있는데, 이정모(1995년)는 기억 체계 이론과 최근의 연구주제에 대해서 개관하였다.


    언어  언어와 관련된 연구는 70년대에 이어 80년대 이후에도 활발하게 지속되고 있다. 연구의 역사가 다른 분야에 비해 길 뿐 아니라, 참여한 학자의 수도 단연 많다. 이미 1950년대에 장동환의 연구를 비롯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서는 조명한의 연구가 두드러진다. 조명한의 연구는 문장이해와 언어발달이었다. 80년대에 들어서면 한글정보처리와 관련된 연구들이 대폭 증가한다. 자모지각, 단어인지, 문장이해, 덩이글 이해, 언어발달 등 연구의 영역도 다양해진다. 1985년에 조명한이 언어심리학을 저술하였는데, 그 때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들이 인용되고 종합되고 있다.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9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는데, 1992년에 발행된 본 분과회지는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1989년에 시작되어 매년 열리고 있는 인지과학회?정보과학회 주최의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 「인간과 기계와 언어」도 언어 관련의 연구성과들이 발표되는 무대의 하나인데, 매년 5~6건의 분과회원의 발표를 볼 수 있다.

    단어인지의 경우, 이미 60년대에 이의철과 조명한의 연구(1968년)가 있었으나, 정보처리 패러다임에 근거한 연구는 80년대 이후에 등장한다. 김정오(1982년)의 한글 글자의 지각적 집단화에 관한 연구가 가장 먼저 나왔다. 이후 지각 또는 주의의 관점에서 한글 자모 또는 단어의 처리를 주제로 한 연구들이 많이 나타난다. 예컨대, 이영애(1984년)의 한글 글자의 시각적 체제화에 대한 연구, 한글 낱자 처리에서 시각변형의 효과(1990년), 조규영과 진영선(1991년)의 회전된 단어의 읽기, 도경수(1992년)의 자소통합과정에 대한 연구, 김정오와 김재갑(1990, 1992년)의 글자처리와 낱자의 지각에 대한 일련의 연구, 김정오와 한우석(1993년)의 단어지각에서 주의의 역할에 대한 연구 등이다. 한글 글자 유형의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아마도 글자유형의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김민식과 정찬섭(1989년)일 것이며, 이후 이준석과 김경린(1990년)의 한글 글자 처리의 단위에 대한 연구, 김미현과 이만영(1992년)의 글자유형의 분류처리에 대한 연구, 이광오의 글자유형과 음독에 대한 연구(1993년)와 글자와 음절의 내부구조에 대한 연구(1995년) 등이 나타난다. 한편, 지각적 측면보다는 어휘근접적 측면에 더 관심을 둔 연구들이 있는데, 김정오, 이관용, 조증열의 한글단어의 의미처리에 대한 연구(1984년), 이관용과 이태연(1989년)의 반복제시에 의한 어휘근접의 연구, 박태진(1990년)의 한자표기단어의 음운적처리에 대한 연구, 박권생(1993년, 1995년)의 한글단어의 음독과정에 대한 일련의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한자표기 동음이의어 및 다의어에 대한 연구도 박태진(1989년), 정운심과 신현정(1992년)에 의해 실시되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연구문제 중의 하나는 표기체계와 관련된 것인데, 이에 대한 연구로서는 이양(1995년)의 표기심도와 단어인지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남기춘(1995년)의 한글과 한자 단어의 재인 비교, 김지순(1995년)의 표기-음운 연결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한편, 어휘 의미구조의 분석을 시도하는 연구들도 실시되었는데, 이만영이 김영선과 함께(1989년) 요인분석법을 사용하여 색채서술어의 의미구조를, 이흥철과 함께(1990년) 정서관련어휘들을 분석하였다. 그 밖에 한글의 편집체제와 가독성을 다룬 연구로서 정찬섭(1992년), 김호영과 정찬섭(1992년), 이수정, 정우현, 및 정찬섭(1993년), 정우현, 한재준, 및 정찬섭(1993년) 등이 발표되었다. 한글과 한자처리의 대뇌반구 차이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한광희, 정찬섭, 및 민성길(1987년)의 연구를 필두로, 이옥경과 L. Carter(1988년), 한광희, 유명현, 및 정찬섭(1989년), 진영선(1992년), 임호찬과 진영선(1994), 한광희와 감기택(1995) 등의 연구가 이어진다. 90년대에는 반응시간 등을 측정치로 하는 전형적인 방법 이외에 안구운동형태나 사상관련전위(ERP)를 사용하는 연구들도 등장한다. 김정훈과 이춘길(1991년)이 전자를 사용하여, 남기춘, 이홍재, 및 김현택(1996년)이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여 한글 독서 과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김명선(1994년)도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여 단일언어자와 한국어-영어 이중언어자의 단어의미 이해과정을 비교하였다. 그 밖에 한국어가 아닌 언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로서, 이광오(1990년)의 일본어의 단어인지과정에 대한 연구가 있다.

    한글단어인지 연구의 기초자료인 어휘 빈도 조사도 이루어지는데, 김영채(1986년)가 초등학교 교과서의 어휘출현빈도를 조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대상어휘가 초등학교 교과서였기 때문에 용도가 제한되었다. 광범위한 조사로서는 정찬섭이 관여한 연세대학교 사전편찬위원회의 조사(1991년)가 있는데, 1956년의 문교부 조사 이후 처음이다. 한국어 단어인지과정에 대한 연구의 열기에 비해 조사가 매우 늦은 감이 있으나, 그것이 앞으로의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대단히 크다. 단, 아직 완전히 공개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 흠이라고 하겠다.

    문장이해에 대한 연구는 조명한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의 지도를 받은 김영진(1981년), 이광오(1983년), 이현진(1983년), 김영란(1985년) 등이 복문의 이해를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하였다. 김영진은 관계절 문장의 처리에 대한 연구(1982, 1985, 1995년), 작업기억내에서 통사처리과정(1993년) 등 일련의 연구들을 실시하였다. 이재호와 김성일(1994년), 김성일과 이재호(1995년)도 문장처리에 관한 연구를 하였는데 그들은 통사적 제약과 화용적(pragmatic)제약이 문장의 이해와 기억에 미치는 효과를 다루었다. 두 개 이상의 문장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용어 참조과정에 대한 연구들은 1990년을 전후하여 등장하는데, 유창화와 이정모(1989), 김선주와 이만영(1989년, 1992년), 방희정(1990년), 이재호와 이만영(1990, 1992년), 이정모와 이건효(1992년), 이재호(1993년) 등의 연구가 있다.

    음성지각에 대한 연구로는 최창환과 이만영(1991년)의 연구가 최초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말 단음절 청취에서 음소혼동패턴을 조사하였다. 이광오(1994, 1995년)는 음절탐지과제를 사용하여 한국어 음성지각의 단위로서 음절에 대해 조사하였다.

    담화(discourse) 및 덩이글(text) 처리에 대한 연구들도 활발하다. 이 분야에서 처음 행해진 연구는 이정모의 것이다. 그는 응집성의 유형이 덩이글(text)의 기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1984년)를 시작으로 덩이글 처리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공동연구자들과 발표하여 왔다. 덩이글이란 용어는 그가 작명한 것이다. 예컨대, 문장 간의 인과관계 추론에 대한 이흥철(1984년)의 연구, 이정모와 최상섭(1986년)의 인과적으로 연결된 문장들의 처리에 대한 연구, 이종구와 이정모(1989년)의 글의 위계와 의외정보 및 의외성의 해결이 이해와 기억에 미치는 영향, 조경희와 이정모(1992년)의 글에서의 대비적 정보처리 등이 있다. 그 밖에 조혜자의 이야기 구조에 따른 이해시의 추론양상에 대한 연구(1989년)와 대형구조(macrostructure)가 글이해에 미치는 영향(1990년), 양병한(1990년)의 글의 조직화와 단서-목표간 거리에 대한 연구, 도경수(1994년), 박천식(1994년)의 글에서의 인과적인 정보의 표상에 대한 연구, 장윤희와 이만영(1995년)의 이야기 글에서 등장인물의 정서상태 추론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김정호와 김선주(1990년)의 글의 삽입표제와 구획나누기가 글의 회상에 미치는 효과, 김수연(1990년)의 텍스트의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학습책략, 김정호와 김선주(1992년), 김정호(1993년)의 설명문 이해에서 개관문장(preview sentence)과 문단화의 효과 등이 있다. 그외 스크립트를 다룬 연구들로서 이재호(1984년), 박태진(1985년, 1986년), 박천식과 도경수(1990년) 등이 있다.

    언어산출에 대한 연구도 적기는 하지만 9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정모의 실험실을 중심으로 작문과정(노영희와 이정모, 1993년)과 발화실수과정(고혜선과 이정모, 1995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광오(1991, 1993년)는 필기실수의 분석을 이용하여 한글필기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단위들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정모, 이재호, 및 김영진(1994년)은 한국어의 이해 및 산출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들을 개관하였는데, 이것은 당시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그러나 단어인지 및 자모지각에 대한 연구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언어습득의 분야에서는 본 분과회원으로서 이승복과 이현진이 활약하고 있다. 이승복은 문법적 형태소의 발달에 대한 연구(1981년)을 비롯하여 부정표현의 발달에 관한 일련의 연구(1982, 1985)에 이어 학위논문 「어린이 언어에서의 부정문의 이해」를 발표하였고, 이후 단어의미 획득에 대한 연구(1994, 1995년)를 하였으며, 1994년에는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한 언어획득과 발달」을 저술하였다. 이현진은 언어습득에서 부정적 증거의 역할(1992년, 1994년), 부분집합원리에 대한 연구(1990년) 등 다수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응용 언어심리학적인 연구도 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는데, 박태진(1988), 진영선(1989년), 염은영과 정찬섭(1995), 조증열(1996년)이 제2언어 습득 및 이중언어 사용과 관련된 연구를 시도하였다.


    사고 추론과 문제해결을 포함하는 사고과정에 대한 연구는 90년대에 들어 연구의 양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추론을 다룬 연구들 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조명한의 연구로서,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조명한과 윤훈희(1985)와 조명한(1989, 1990년)의 삼단논법 추리에서의 형상(격) 효과, 김청택(1992년)의 조건추리에 대한 연구 둥이 있다. 도경수(1992)의 인과적 조건문의 추리에 대한 연구, 김영채, 박권생, 및 박아청(1992)의 개념적 지식과 논리적 사고, 김영채(1995)의 추론분석을 통해 본 성차편견의 발달 등도 추론의 문제를 다루었다. 문제해결의 분야에서는 이영애가 일련의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영애(1986년)의 영역의존적 문제해결 연구의 이론적 및 방법론적 제문제를 시작으로, 오승민과 이영애(1990년)의 Atwood와 Polson의 과정모형 검증, 김수연과 이영애(1991년)의 문제해결에서의 문제간 전이효과, 황혜남과 이영애(1993)의 하위목표 유형에 따른 문제간 전이효과로 이어진다. 계명대의 김영채와 박권생도 문제해결의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영혜와 김영채(1992)의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 김영채(1994)의 유추적 문제해결의 전이와 개념적 이해의 개발, 박권생(1993)의 창의적 사고의 본질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또, 김영채(1995년)는 「사고와 문제해결의 심리학」을 저술하였다. 계명대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고개발연구회는 사고 및 문제해결 능력의 개발, 그리고 창의적 사고의 연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학술잡지도 발행하고 있다. 그 밖에 전문 지식에 대한 연구도 김영채와 양종철(1992년)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종구(1994, 1995년)는 판단과 의사결정과 같은 전통적으로 사회심리학의 문제들을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한 연구들을 제출하였다.


    정서  정서의 문제가 인지심리학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등장하는 것은 80년대 이후이다. 이관용이 이미 1980년에 정적정보처리에 대한 연구를 제출하였으며, 그것은 김기중(1993년)의 자극의 감정가가 정보처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이만영과 이흥철(1990년)은 정서관련어휘의 의미구조에 대해 검토하였으며, 이흥철(1994년)은 정서상태가 기억 수행 및 주의 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학심리학 60년대 말엽에 장동환 등 성균관대의 학자들이 행한 인간공학적 연구들이 행동주의적인 근거를 가진 것이라면, 90년대의 연구들은 인지심리학적 모형과 방법론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만영의 실험실에서는 한글타자행동에 관한 일련의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이만영(1990년), 이만영, 김선주, 및 최인현(1991년), 조양석과 이만영(1993년), 이창환과 이만영(1994년), 조양석, 황태웅, 및 이만영(1994년) 등이 그것이다. 김정호(1991년)는 안-밖 합치도 틀을 가지고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에 대해 고찰하였다. 서울대의 김정오(1995년)도 「공조기 성능평가 연구」 등 인간공학적 연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94년의 여름연수회에서는 인간-기계 상호 작용에 대한 토론 및 사례발표가 있었으며, 1995년에는 박창호 외 다수의 젊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인지공학 연구 모임”이 결성되었다.


    기타 김성태는 注意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매우 독특한 흔적을 남겼다. 그는 처음에 성숙인격을 탐구하였는데, 性理學에서 강조한 敬이 성숙인격의 바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敬이 注意의 한 형태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주의에 관한 각종 이론들을 검토하고 그것을 敬에 관한 儒家的 이론들과 비교하였다. 그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하여 1982년에 「敬과 注意」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이후, 동양적 심성이론에서 현대적 의의를 찾으려는 노력은 김정호(1994년)의 인지과학과 명상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도 시도되었다.

    심리학의 체계 및 연구방법론의 기초에 대한 탐구도 전개된다. 이정모는 인지심리학 연구의 성과가 과학 이론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비롯하여, 심리학 연구방법론의 문제, 각종 기본개념들의 형성사를 검토하고 각종 이론적 틀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하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였다.


    4) 학부 및 대학원의 교과과정


    80년대가 되면 대부분의 대학에 감각지각, 인지, 학습, 언어 등과 같은 과목이 거의 다 개설된다. 그 이후에 생긴 대학들에서도 보통 실험 및 인지 관련과목으로 감각 또는 지각, 학습, 인지 등 적어도 3개 이상의 강의를 개설하게 된다. 이들 과목은 대개 필수로 지정되어 있다. 대학원의 전공에도 이와 유사한 분화가 나타나는데, 1980년에 서울대 석사과정에 학습, 지각, 언어 전공이 생겼다. 모두 9개의 전공 중에 3개가 실험 및 인지 분야였다(차재호, 1987). 그리고 대학원이 설치된 거의 모든 대학에서 실험 및 인지 관련 전공이 석사과정에 개설된다. 박사과정 또한 많은 대학에 개설되나, 실제로 박사를 배출한 실적이 있는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경북대 등이다(1996년 3월1일 기준).


    5) 각 대학의 연구동향


    가톨릭대  가톨릭대 심리학과의 전신은 성심여대 심리학과이다. 성심여대에는 1979년에 이정모가 부임하여 실험실을 열었으나 고려대로 옮기었고, 1981년에 김기중이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기중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6년)와 박사학위(1993년)를 받았으며, 주 연구분야는 情的정보처리이다. 최근에 석사과정이 개설되어 졸업생 1명을 배출하였으며, 현재 1명이 재학 중이다. 실험실은 일방거울, 폐쇄회로, 프로젝터식 순간노출기, 실험용 PC 등의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경남대 1984년에 실험실이 개설되었다. 처음에는 변은희(1983년 부임)가 실험실을 담당하였으나 1987년에 사임하고, 그 후임으로 조증열이 1991년에 부임하여 현재까지 실험실을 담당하고 있다. 조증열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4년), 오레곤주립대학에서 석사학위(1985년), 루이지애너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1991년)를 받았으며, 암묵학습 및 외현학습, 개념학습, 그리고 한글 및 한자 정보처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실험실은 인지실험실(19평)과 감각?지각실험실(36평)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실험기기로는 3 field 순간노출기, 실험용 PC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석사과정은 개설되어 있지 않다.


    경북대 김경린에 의해 실험 및 인지 분야의 실험실이 개설되었다. 그는 1980년에 교육학과에서 신설된 심리학과로 옮기어 왔으며, 인지실험실 및 동물실험실, 실험실습실을 만들고 운영하였다. 그는 경북대에서 석사학위(1970년), 뉴욕주립대학(알바니)에서 박사학위(1980년)를 받았다. 관심분야는 학습 및 기억이었으며, 심리학 연수회에 여러 차례 초빙되어 연구방법론에 대해 강의하기도 하였다. 1989년에 작고하였다. 현재 진영선(1988년 부임)과 곽호완(1993년 부임)이 재직하고 있다. 진영선은 플로리다대학에서 석사학위(1985년) 및 박사학위(1988년)를 받았으며, 대뇌반구 비대칭성, 이중언어처리, 한글단어지각 등의 연구를 하고 있다. 곽호완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5년), 죤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학위(1992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지각, 주의집중, 공학심리 등이다. 실험실에는 순간노출기 등의 실험기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안구운동측정기를 도입하였다. 지각, 인지, 공학심리학 전공을 석사 및 박사과정에 개설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박사 1명, 석사 15명을 배출하였다. 96년 8월말 현재 박사과정에 2명(수료), 석사과정에 1명이 재학중이다.


    경상대 경상대 심리학과에는 실험 및 인지 분과회 소속 회원이 2인 재직하고 있다. 1983년에 부임한 윤병희는 서울대에서 운동감각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1965년)를 받았으며, 발달적 접근에서의 인지심리를 주 연구분야로 하고 있다. 1985년에 부임한 이양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4년) 및 박사학위(1995년)를 받았다. 관심분야는 초기 시지각과정 및 한글 단어인지 과정이다. 정신물리 실험실에 프로젝터식 순간노출기 등의 기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공과대학과도 협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1998년에 석사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계명대  실험 및 인지 분야에 2명의 교수가 재직중이다. 김영채(1979년 부임)는 경북대(1964년)와 뉴햄프셔대학(1969년)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시간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1971년)를 받았다. 계명대의 심리학과를 창설하였으며 사고와 문제해결에 관한 이론 정립과 응용의 문제를 연구하여 왔다. 현재는 사고력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고, 효과적인 공부 방법 개발과 효율적인 사고력 향상 교수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박권생(1989년 부임)은 텍사스A&M대학에서 박사학위(1989년)을 받았으며, 공간지각을 주전공으로 인지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하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사고 및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김영채와 함께 사고력 향상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는 한편, 단어 인식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이들의 연구는 계명대학교 부설 행동과학연구소와 대한 사고개발연구회와 공조하여 진행되어 왔다. 약 15평의 실험실과 약 30평의 실험실습실을 구비하고 있고, 수십 종의 실험기자재를 보유하고 있다. 1984년 11월에 개설된 석사과정에서는 지금까지 10여명의 석사를 실험심리 전공으로 배출하였으며, 현재는 3명이 등록하고 있다. 그리고 1989년 11월에 개설된 박사과정에는 지금 현재 2명이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1명이 재적하고 있다.


    부산대 부산대 심리학과는 1978년에 설립되었으며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현재 신현정(1979년 부임), 도경수(1987년 부임), 이재식(1996년 부임) 등 3인의 교수가 실험 및 인지 분야의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신현정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8년)를, 인대애나대학에서 박사학위(1990년)를 하였으며, 범주화, 어휘처리, 음악지각에서의 범주화 등에 관해 연구하여 왔다. 도경수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0년)를,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1986년)를 받았다. 운동지각, 한글지각, 글의 이해, 추리와 사고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이재식은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학위(1995년)를 하였으며, 연구 관심 분야는 약물/알콜이 운전자의 운전수행 및 정보처리에 미치는 영향, 자동항법장치 개발을 위한 운전시뮬레이션, 그리고 운전자의 피로나 인지부하를 줄이기 위한 자동차내 정보제고 시스템 개발 등이다.

    약 20평의 인지실험실 공간이 있으며, 현재 대부분의 연구는 PC를 사용하여 진행되고 있으나, 양안 순간노출기 등을 비롯한 고전적인 실험설비 등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1996년 9월 1일 현재까지 6명의 석사를 배출하였으며, 3명이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96년에는 인지과학 협동과정(석사)이 개설되었다.


    서울대 서울대에는 실험 및 인지 분야의 교수가 3인 재직하고 있으며, 이들이 각각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언어심리학 실험실, 학습실험실, 지각실험실이 그것인데, 이들 실험실의 역사는 해방 직후, 아니 경성제대 시절까지 올려잡을 수도 있다. 경성제대의 실험실과 실험기기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태로 전공분야의 교수가 담당하여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의 관악캠퍼스 조성 이후의 일이다. 서울대에는 1995년에 인지과학 협동과정이 개설되어, 심리학이 언어학, 철학, 생물학 그리고 컴퓨터공학 등과 공동연구 및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인지과학 협동과정에는 언어심리학 실험실과 지각심리학 실험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언어심리학 실험실은 조명한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의 실험실은 1975년에 조명한이 신문대학원에서 심리학과로 옮기어 오면서 시작되었다. 조명한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 (1963년)및 박사학위(1972년)를 받았다. 그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언어에 대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에 대한 연구이다.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전자는 언어습득, 문장이해, 작업기억과 언어처리 등에 대한 연구가 포함되며, 후자에는 인간의 삼단논법적 추론에 대한 연구가 포함된다.

    언어심리학 실험실은 언어와 사고 실험실과 인지과학 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자는 약 12평, 후자는 약 9평의 규모이다. 언어와 사고 실험실에는 동시에 여러 피험자를 실험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추어져 있으며, 또한 소음을 통제할 수 있는 방음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이들 실험실에는 자극의 제작, 제시, 반응수집 등 일련의 실험절차들을 통제하기 위한 PC와 향후 환등기로 자극을 제시할 때에 대비한 스크린이 두 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 외에 음성 반응을 탐지할 수 있는 음성반응키 장치가 있다. 실험외적 장비로서는 타 대학이나 실험실과의 네트워크를 위한 LAN 설비가 이루어져 있다.

    현재까지 언어심리학 실험실에서는 21명의 석사와 1명의 박사가 배출되었고 현재 박사과정에 1명 석사과정에 3명이 재학중이다. 신현정, 이승복, 도경수, 김영진, 이광오, 이현진 등이 이 실험실 출신으로, 국내 각지의 대학에 부임하여 언어 및 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지각심리학 연구실은 김정오(1980년 부임)가 담당하고 있다. 김정오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1년)를 받았으며,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박사학위(1978년)를 받았다. 김정오가 부임하기 이전에도 감각 및 지각실험실이 있었으나, 전공 교수는 없었다. 이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크게 두 범주로 나누어 진다. (1) 한글 낱자, 글자 및 단어 정보처리, 정적 및 부적 반복효과, 전의식 및 의식정보 처리, 전역 및 국지선행성, 반복색맹과 주의과정, 착각결합과 주의과정에 관한 기초실험 연구와 (2)타자행동에 관한 정보처리 분석, 운동 중인 물체의 탐지에 기여하는 대비 감민도와 시력의 역할, 공조기로 제어된 환경이 학습 및 탐지과제에 미치는 영향 등의 산학협동, 응용실험 연구로 구성된다. 현재 색채처리와 정동반응 구조의 관계를 밝히는 응용실험들도 수행 중이다.

    지각심리학 연구실은 지각실험실과 주의과정 실험실로 이루어져 있다. Takei사 3 field 순간노출기 2대, Lafayett사 순간노출기 1대, 586 PC 1대, 486 PC 4대, 그리고 색 측정기(Minolta 사) 와 명도측정기 등의 측정기 및 주변기기(반응속도 측정기, 음성반응키 등)가 이 두 실험실에 비치되어 있다. 지각실험실에는 15명 정도의 학생이 동시에 실습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이와 별도의 방음실이 완비되어 있다. 1980년 이래 매주 금요일 오후에 지각심리 세미나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글정보처리, 형태지각, 주의과정, 색채지각 등을 주제로 하여, 석사 또는 박사학위 논문들의 실험 설계및 결과 등이 발표되어 왔다.

    현재까지 이 실험실에서 21명의 석사와 3명의 박사가 배출되었다. 곽호완, 조증열,이양, 오길승, 김문수, 박창호, 박주용이 이 실험실 출신으로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이 실험실 출신의 전공은 생리심리학에서부터 시각, 지각, 수리모형, 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현재 5명의 석사과정생이 재학중이다. 그리고, 메사추세츠 대학의 K.Rayner의 Eye Movement Research Lab.과 국제공동연구가 추진중이다.


    학습실험실은 이관용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의 실험실은 1975년에 이관용이 학생지도연구소에서 심리학과로 옮기어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관용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64년) 및 박사학위(1980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학습 및 기억과정, 정적정보처리 등이다. 현재까지 6명의 석사와 3명의 박사를 배출하였다. 김기중, 박태진, 이태연이 이 실험실 출신으로서 대학에 진출하였다. 이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에는 범주화, 기억, 정적정보처리, 단어인지에서 점화효과 및 반복효과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들이 포함된다.


    성균관대 성균관대 심리학 실험실은 다른 대학과는 그 특성이 다르다. 성균관대학교에는 대학원에 실험심리 전공 또는 인지심리 전공이 별도로 독립적으로 있지 않고 일반심리학 전공 안에 사회심리, 실험 및 인지 심리 등의 전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험심리실험실이나 인지심리실험실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심리나 임상심리와 같은 다른 전공 분야와 실험실을 공유하고 있다. 단지 전공연구 모임, 세미나 등만 독립적으로 진행될 뿐이다.

    성균관대학교의 실험심리 및 인지심리 관련 실험실은 학과 명칭이 산업심리학과가 아니라 심리학과(1953년 창립)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성백선(작고), 방현모(작고)가 실험실을 지도하였으며, 그 후 장동환이 지각, 학습 심리학 실험들을 지도하여 1963년에 성대 최초의 석사학위 논문(한범숙의 감성적 예비조건형성에 관한 논문)을 배출하고 1993년에 은퇴하였다. 1986년에 이정모가 부임하면서 인지심리학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정모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1년)를, 캐나다 퀸즈대학에서 석사학위(1975년) 및 박사학위(1979년)을 받았으며, 언어이해와 언어산출에 관한 연구들을 주로 수행하여 왔다.

    기록이 남아 있는 1980년대부터 기술하자면 1986년부터 시작되어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는 인지심리학 세미나가 언어이해의 문제와 일반 인지과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90년대 초 까지 계속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하여 언어심리학 중심의 석사 논문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1986년 이래 8명의 인지심리학 석사와 1명의 박사가 배출되었고 졸업논문의 내용은 언어이해가 5, 언어산출 2, 추리 1, 의사결정 1이었으며, 현재 박사과정 2명, 석사 인지과학 전공 4명이 재학하고 있다.

    초기에는 심리학실험실은 문리과대학 건물 지하실에 자리잡고 있었다. 심리학과 실험실과 학생지도연구소 실험실에는 Skinner상자, 거짓말 탐지기, 순간노출기, 동물 미로 등의 실험기기들이 있었다. 이후 이과대학(현 학생회관) 3층으로, 그리고 다시 현 제2교수회관 8층으로 실험실들이 이사했으며, 이 당시의 실험실 현황과 실험기기들의 양과 질은 70년대 중반에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사하며 국제 차관에 의해 대거 실험기기들을 도입하기 이전까지는 국내 심리학과 중에서 가장 우수하였다. 1980년대부터 1993년까지 성균관대학교의 심리학 실험실은 산업심리학과가 속하여 있는 경상대학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의 실험실은 행동관찰실, 특수실험실, 실험준비실, 교수연구자료실의 4개의 실험실이 있었으며 도합 298m2 크기의 면적이었다. 1993년에 신축건물로 이전함에 따라, 연 면적 175.5m2의 4 개의 실험실, 즉 행동관찰실(54.0m2), 특수실험실(54.0m2) 특수실험준비실(27.0m2), 컴퓨터실험실(40.5m2) 등을 갖게 되었다. 이 실험실들은 LAN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구비되어 있고 1960-70년대에 도입한 동물실험용, 인간 학습, 지각 및 운동 기술 실험용의 Takei 실험기기 등이 있다.

    대외적 협동 측면에서는, 1995년도에 이르러 교내의 다른 학과들과 연합하여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개설함에 있어서, 그리고 이 과정들의 대학원생들의 교육과 연구 지원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학과내의 산업심리학 전공자들과 연계하여 인간공학적, 인지공학적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다.


    연세대  연세 대학교는 1981년도에 심리학과가 창립되었고, 첫 실험심리학 강의는 1982년부터 이루어졌다. 이 때에도 학부실습용으로 실험실이 있었으나 정찬섭이 부임한 1984년부터 심리학 실험실이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정찬섭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5년),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학위(1983년)를 받았으며, 관심분야는 지각심리학, 인지심리학, 실험심리학 등이다. 1994년에 부임한 한광희는 연세대에서 석사학위(1987년) 및 박사학위(1992년)를 받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어바인)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하였으며, 관심분야는 인지공학, 공학심리학, 실험심리학, 연구방법론 등이다. 현재 약 30여 평의 공간에서 형태지각, 공간지각, 운동지각등 지각심리학의 제 문제들과 한글처리, 언어이해 그리고 응용분야로서 인지공학, 감각공학, 공학심리학 등과 같은 응용분야와 관련된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다. 10여년동안 5명의 박사와 19명의 석사가 배출되었으며 현재 학위 과정에는 박사과정 5명, 석사과정 5명이 있다(1996. 9. 1 현재). 그리고, 1994년 12월 심리학, 전산학, 언어학, 신경과학 등 여러 전공의 교수들이 모여 대학원 협동과정으로 인지과학 전공과정을 국내 최초로 대학원에 설립하였고 인지과학 내에서 박사과정 1명, 석사과정 5명의 학생들이 심리학 세부전공생으로 재학중이다.

    이 실험실에는 학부생들의 실험실습을 위해 고전적인 실험장비들인 Memory drum, Skinner box, 무게변별장치, 각종 착시도구, color mixture장치들이 있으나,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자극의 제작, 제시, 반응수집등 일련의 실험절차들이 computer를 통해서 통제된다. 컴퓨터에서 구현할 수 없는 순간노출 실험을 위해 순간노출기, ramdom access projector, 후면 screen이 구비되어 있다. 고가장비로서는 공간주파수 자극을 쉽게 제작할 수 있는 graphic system인 Cambridge research system사의 VSG와 각 파장별 강도분포를 측정할 수 있는 spectrometer와, purkinje image를 이용하여 공간/시간 해상도가 뛰어난 눈운동 추적기가 있다. 

    실험외적 장비로서는 타 대학이나 실험실과 Internet으로 연결될 수 있는 workstation (@psylab.yonsei.ac.kr)이 있다.  또한 자극의 제작과 발표자료를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사진이나 printer된 화상을 입력받을 수 있는 600dpi급 color scanner, 그림 파일을 직접 필름으로 만들 수 있는 film recorder가 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는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http://psylab.yonsei.ac.kr/vision).


    영남대 인지심리학 실험실의 책임자는 이광오로서 1989년에 영남대에 부임하였다. 실험실 개설년도는 1991년이다. 이광오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3년), 일본 Hokkaido대학에서 박사학위(1993년)를 받았으며, 관심영역은 언어심리학이다. 부임후 현재까지의 주요연구분야는 한글 단어인지 과정이며, 1992년부터 발화 실수 및 필기 실수, 그리고 1994년부터는 한국어 음성 지각 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인지 심리학 실험실은 약 10평 정도의 크기이며, 내부에 2평 정도의 방음실이 있다. 실험은 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실시하며, 음성실험을 위해 최근에 디지털 음향기기들을 약간 도입한 정도로서 고가의 장비는 갖추고 있지 않다. 주로 저렴한 PC를 실험기기로 활용하고 있다. 1994년 1학기에 대학원생이 처음 입학하였으며, 현재 2명의 대학원생이 재학중이다(박사과정 미개설). 이들은 음성지각과 제2언어 학습을 주제로 연구중이다.

    영남대 아동학과에는 이현진 교수가 1991년에 부임하여 재직중이다. 이현진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어바인)에서 박사학위(1990년)를 받았다. 주 관심분야는 한국아동의 언어습득과정이며, 여러 편의 관련논문을 발표하였다. 실험 및 인지 분과회 이외에 발달심리학회, 언어학회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994년에는 심리학과의 이광오 및 영남대의 국어학 언어학 전공 교수들과 함께 음성지각 및 음성지각의 발달에 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였다.


    전북대 인지 및 지각 실험실이 1995년 2학기에 개설되었다. 담당교수는 1993년 9월에 부임한 박창호 교수로서 그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86년) 및 박사학위(1993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형태지각,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인지공학이며, 인지공학 연구 모임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실험실은 1실을 확보하고 있으나, 개설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별다른 실적이 없다.


    충남대 1981년에 부임한 서창원에 의해 실험실이 개설되었다. 서창원은 고려대에서 석사학위(1975년) 및 박사학위(1991년)를 받았으며, 단기기억, 장면의 이해, 추론과 언어 이해의 문제를 연구하였고 사회행동의 인지적 접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실험 및 인지 관련 실험실은 7평 규모의 실험실과 장비로는 3-4대의 컴퓨터와 음성반응측정기와 순간노출기 그리고 신경인지심리학 장비인 뇌파측정기 등을 갖추고 있다. 박사과정은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설이 안된 상태이며 실험 인지 전공의 졸업생은 유관호(학회 간사, 충남대학교 강사, 92년 졸업)와 재학생 1명이 있다. 1981년도에 신설된 충남대학교 심리학과는 대부분의 다른 지방대학과 마찬가지로 예산지원의 부족과 연구인력의 부족 등으로 실험 인지 심리학 등의 기초분야의 발전과 연구여건이 다른 응용분야에 비해 열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충북대 심리학과에는 본 분과회 소속 회원 2인이 재직하고 있다. 1981년에 부임한 김유진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0년)를 연세대에서 박사학위(1992년)를 받았다. 담당분야는 지각심리학이며, 착시현상, 주관적 윤곽 등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1984년에 부임한 이승복은 서울대에서 석사학위(1979년) 및 박사학위(1987년)를 받았으며, 연구분야는 언어심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언어습득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이승복은 대우재단의 지원을 받아 독회(인지발달 연구 모임)를 월 1회 개최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언어획득과 발달(1994년), 심리학개론(12명 공저, 1994년), 유아의 심리(16명 공저, 1995년) 등을 저술하였으며, 심리학사(4명 공역, 1995년)를 번역하였다. 실험실은 심리실험실(10평 정도)과 인지 발달 실험실(1993년 개설)로 이루어져 있다. 코닥 환등기, 심경각 검사기, Shart녹음기, Video camera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석사 졸업생 2명을 배출하였고 1명이 재학중이다.

      

    기타 아직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지 않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실험 및  인지 전공학자는 다음과 같다. 호서대 산업심리학과 이태연, 덕성여대 김정호, 광운공대 김성일 등이다.


    6) 출판활동


    70년대에는 한 권도 없었던 인지심리학 교과서들이 80년대에는 줄을 이어 나타난다. 「인지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들은 모두가 번역서들이다. 김경린(1982년)이 M.Wessells의 책을, 이관용 등(1984년)이 G.Cohen의 책을, 이영애(1987년)가 J.R.Anderson의 책을, 김영채 등(1991년)이 S.Reed의 책을, 신현정(1994년)이 C.Martindale의 책을, 서창원 등(1995년)이 M.Matlin의 책을 각각 번역하였다. 그밖에, 이승복(1983년)이 인지심리학의 전망(원저: R.E.Mayer, The promise of cognitive psychology)을 번역하였다. 인지과학에 관한 교과서의 번역은 90년대에 들어서 나타나는데 이정모와 조혜자(1991년)가 컴퓨터와 마음(P.N.Johnson-Laird, The computer and the mind)을 번역하였다. 1989년에는 이정모를 비롯한 인지과학 공동연구 모임이 「인지과학: 마음?언어?계산」을 펴내었다. 이 책은 인지과학의 각 분야를 개관한 책으로서 인지과학의 교재 또는 부교재로서 사용되었다. 인지심리학의 연구방법론에 관한 전문적인 서적으로서는 이관용 등(1988년)이 번역한 인간기억 및 인지 연구법(C.R.Puff, The handbook of research methods in human memory and cognition)이 있다. 이정모(1996)는 「인지심리학의 제문제(I)」을 편집하였는데, 이는 다수의 집필자들이 참여하여 인지심리학의 여러 분야의 연구들을 개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최초의 전문 논술 서적이다.

    지각분야에서는 저술활동이 매우 빈약한 편인데, 아직 한 권의 교과서조차 번역되지 아니하였다. 다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한 책으로서 김정오(1982년, 1993년)가 번역한 시각적 사고(원저: R.Arnheim, Visual thinking)와 마음의 시각(원저: R.Shepard, Mind's sight)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좀더 특수한 문제를 다룬 책으로서 이관용(1985년)이 번역한 정신물리학(원저: Gesheider, Psychophysics)이 있다.

    학습 및 기억분야에서는 김영채(1982년)가 「인간학습 및 기억」을 저술하였다. 번역서로는 김영채(1983)의 기억의 이론과 적용(원저: L.S.Cermak, Improving your memory), 이관용, 김기중, 박태진(1984년)의 인간기억의 심리학(원저: A.Wingfield & D.L.Byrnes, The psychology of human memory)이 있다. 김영채(1990년)는 그밖에 「학습과 사고의 전략」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학습분야에서는 김영채(1983년)의 학습심리학(B.R.Hergenhahn, An introduction to theories of learning), 변창진과 김경린(1984년)의 사회적 학습이론(원저: A.Bandura, Social learning theory), 이관용 등(1988년)의 학습의 이론(원저: G.H.Bower & E.R.Hilgard, Theories of Learning), 신현정(1992년)의 학습심리(원저: B.Schwartz, Psychology of learning and behavior)가 번역 출판되었다.

    언어분야에서는 조명한(1982년, 1985년)이 「한국아동의 언어획득연구」과 「언어심리학」을, 그리고  이승복(1994년)이 「어린이를 위한 언어획득과 발달」을 저술하였다. 신현정(1985년)은 사고와 언어(원저: L.S.Vygotsky, Language and thought)를 번역하였다.

    문제해결의 분야에서는 이영애(1992년)가 인간사고의 심리학(R.J.Sternberg, The psychology of human thought)를 번역하였으며, 김영채(1995년)가 사고와 문제해결심리학을 저술하였다.

    공학심리학의 분야에서는 진영선과 곽호완이 1994년에 「공학심리학-시스템설계와 인간수행」(원저: C.D.Wickens, Engineering psychology and human performance)을, 이창우, 김영진, 및 박창호가 「디자인과 인간 심리」(원저: D.A.Norman, 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를 번역하였다.



    5. 결론과 전망



    실험 및 인지 분야는 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80년대 이후의 비약적 성장이 괄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인지주의의 번창에 힘입은 바가 크기는 하나, 이 분야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국내학자들의 기여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연구분야는 다양화하여 이미 한눈에 조감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정도이다. 연구와 교육의 여건도 향상되어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독자적인 인재양성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해마다 회원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인지과학을 매개로 하여 인접학문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그 결과 활동의 무대도 더 이상 심리학회 내에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으나 지금까지는 해외연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 집중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 후발주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심리학의 진로에 대해서 모색하고 우리가 세계의 인지심리학에 기여할 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개성을 확보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와 같은 시도가 이미 김성태(1982년)의 敬과 注意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실험 및 인지 심리학의 개성의 확보가 반드시 동양 및 한국 사상에 바탕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MRC를 중심으로 한 신경심리학적 연구, 캐나다의 이중언어에 대한 연구 등은 연구의 개성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철저한 성찰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내의 인접학문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언어학, 전산학, 공학, 사회학 등 관련분야와의 교류가 한정된 범위내에서는 지금까지도 이루어져 왔으나, 그 교류의 양과 질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 우리는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인접학문과의 교류로 인하여 한국심리학회 내에서의 활동이 감소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90년대 이후 심리학회 연차대회 발표목록을 보면 실험 및 인지 분야 발표 건수의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연구 성과의 보급에도 일정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한국어 교재의 개발이다. 실험 및 인지 분야의 교재는 아직도 대부분을 원서 또는 번역서에 의존하고 있다. 지각분야에는 70년대에 나온 번역서를 제외하면 아직 한권도 없다. 지각 교재의 개발에 대한 소문은 수 년전부터 무성하였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한국어 교재가 필요한 것은 학부에서의 교육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 집단인 실험 및 인지 분과회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회원의 수십배에 이르는 저변이 존재하여야 하며, 그 저변의 양성에는 잘 씌여진 한국어 교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련된 문제로서 용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이미 94년도부터 다시 추진하고 있는 문제인데, 단시간에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으나 적더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이 쉽지는 않겠으나, 그간에 축적된 역량으로 미루어 조만간 해결이 가능하리라 전망한다. 그러나 어려움 또한 예상된다. 작금의 분위기는 기초연구와 관련하여 상당히 우려되는 바가 있다. 실용적인 가치만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 이른바 교육 개혁이 조장하는 대학간, 학문간, 전공분야간의 무한 경쟁 등이 기초 분야에 속하는 실험 및 인지 심리학에는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90년대 들어 심리학보에 투고된 기사에 나타나는 기초분야에 대한 거부감은 일부 인사의 예외적인 견해가 아닐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 임상, 상담, 산업과 같은 분야에 비해 실험심리학에 대한 선호는 과거보다 훨씬 더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학부에서의 기초과목은 축소될지도 모르며 대학원에서 실험심리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 또한 줄어들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는 전공자들의 노력 여하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몇가지 경향들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지과학 협동과정의 개설, 감성공학 프로젝트에의 참여, 소프트과학연구 프로젝트의 추진, 인지공학연구모임의 결성 등이 그것이다. 그 이외에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개발, 제2 언어 학습, 글쓰기 등 실용적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응용의 영역은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에 의해 실험 및 인지의 연구가 사회의 현실적 요구에 답할 수 있으며 사회 속에서의 심리학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고 유용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은우 편(1993). 고 고순덕 박사 추모 기념문집. 오롬시스템(주) 출판부.

    정한택(1982). 한국심리학 60년사. 박영사.

    차재호(1976). 한국심리학의 역사, 현황 및 사회과학협동연구의 방향. 사회과학논문집, 1, 61-100.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차재호(1982). 한국의 학풍?학맥 11 - 심리학: 탈색된 일제의 영향, 분열?논쟁없는 성장기대. 월간조선 11월호, 331-357

    차재호(1987). 서울대학교 심리학의 40년. 서울대학교 학문연구 40년(I). pp306-326. 서울대 출판부.